골프를 왜 할까?
건강을 위해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스포츠로 자연과 동화되고 싶어서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말하기도 한다.
인간의 마지막 욕구는 인정받는 거라 한다. 동반자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고 다른 사람 보다 낮은 스코어를 써내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거다. 그래서 시간과 돈을 지불하며 골프장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골프는 숫자와의 싸움이다. 그래서 더 재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노력한 만큼 스코어가 줄어들고 조금만 침착하게 플레이했으면 새로운 스코어를 만들 수 있었는데 하며 다음이 기다려지기 때문에 미친 듯 골프장을 찾는 이가 많은 것이다.
욕심이 많은 이는 더 좋은 스코어를 만들어 보겠다고 본인을 속이기도 한다. 그 스코어 카드를 나만 볼 거라면 나를 속일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그 스코어카드를 동반자들에게 자랑해봐야 남의 스코어에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잠깐 잘했네! 할 정도지, 내가 기대한 반응이 아니라, 시큰둥한 걸 느낄 것이다. 그들 역시 그날의 본인 플레이에 관심이 있고 그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골프를 치는데 그날따라 내가 원하는 대로 샷이 되고 또 어려운 샷도 그림을 그린대로 날아가 그린 위에 떨어졌다. 그날 작은 내기를 했는데 같이 플레이한 동반자들이 돈을 많이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분도 좋고 중간에 맥주도 사주고 끝나고 위로 겸 다시 맥주를 샀다.
다른 팀들이 먹은 음식값까지 계산하게 되어 오히려 적자가 났지만 처음 느껴본 그 날의 샷이 주는 만족감에 지출이 아깝지 않았다.
같이 플레이는 하지 않았지만 나와 버금가는 친구가 들어왔기에 잘 쳤냐고 물어 자랑 좀 하려 했지만, 그 친구는 말을 돌렸다. 게임이 안 좋았는지 들으려 하지 않아 서운하긴 했지만,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날 몇몇 부부가 식사하러 간다기에 같이 가서 친한 형님이 잘 쳤냐고 묻기에 자랑을 살짝 하는데 그 역시 그랬냐고 잘했네 하더니 말을 돌렸다.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오며 집사람이 오늘 골프가 잘됐다고 자랑을 해댔다.
그러며 당신은 잘 쳤냐고 몇 타나 쳤냐고 묻기에 언더 쳤다고 했더니 듣는 둥 마는 둥 다시 자기 자랑으로 돌아갔다.
집에 와 생각하니 언더파의 스코어를 내도 자랑할 데가 없었다. 모처럼의 좋은 플레이를 하고도 동반 플레이어들은 돈을 많이 잃어서 축하는 커녕 뭐 씹은 얼굴이고, 친한 친구는 자기 플레이가 안 됐다고 관심 없고 내 얘기 잘 들어주던 형님도 남의 골프 얘기는 관심도 없고, 와이프는 언더파가 뭔지도 모르는지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다.
골프를 시작하고 나서 골프가 고독하다고 생각을 했다.
가만히 나를 보자.
동반자 중에 나와 라이벌 관계나 경쟁자가 있다면 그가 잘 쳤을 때 얼마나 진정으로 축하해 주었는지, 그가 버디나 멋진 샷을 날렸을 때 진정으로 굿샷을 외쳤는지, 마지막 한 샷에 승부가 갈릴 때 그 샷이 잘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지.
반대로 내가 멋진 샷을 날리며 마지막 먼 거리 퍼팅에서 그림같이 빨려 들어가 상대를 이겼다면 그 상대는 치욕의 날일 것이고, 그 마지막 퍼팅을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두고두고 자랑거리여서 시시때때로 화제에 올려보지만, 상대는 들을 때마다 괴롭고 듣고 싶지 않은 얘기일 것이다.
주변에서 보면 내 골프 자랑은 모두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려 하지만 남의 자랑은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다른 대화를 나누면 오히려 귀 기울여 잘 듣던 사람도 골프 관련 무용담은 시큰둥하게 듣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러면서 상대 말을 끊고 본인의 무용담을 말하려 한다.
많은 투자를 하여 골프채도 바꾸고 비싼 레슨도 받고 해서 성적이 쑥쑥 올라 월등히 좋은 성적을 낸다면 같이 플레이하던 동반자들은 아마도 다 떠나고 없을 것이다. 예전에 맞수였는데 갑자기 실력 차이가 난다면 열등감도 들고 한 번도 이길 수 없으니 같이 플레이하기가 껄끄러울 것이다.
골프는 상대가 못해야 내가 이긴다. 선수들도 팽팽히 가다가 상대가 실수해주면 다른 상대는 편한 맘으로 멋진 샷을 날리며 우승을 한다.
그래서 골프는 이기적인 스포츠다.
상대방의 좋은 샷은 굿샷이라고 진심으로 큰소리로 외쳐 줘야 좋은 매너를 가진 골퍼라고 볼 수 있다. 내 플레이에 대한 관심보다 남의 플레이를 관심과 칭찬해 줄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가진 골퍼가 되는 것도 진정한 고수로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