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블레어의 소소한 일상 02

이방인의 삶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한국 방송 프로그램은 JTBC의 ‘이방인’ 입니다. ‘이방인’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연예인들의 삶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요, 미국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메이저리거 추신수 선수와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했던 연기자 서민정 씨가 출연하면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보통 해외에서 사는 삶에 대한 로망이 있기 마련인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외국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하는 타 여행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특별한 대본 없이 해외에 사는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소개해 ‘이방인’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언어와 문화가 통하고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 땅을 떠나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로망 가득한 일 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여러 출연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출연자를 이야기하자면 단연 캐나다에 사는 선예 씨 였는데요, 한때 소녀시대와 함께 아이돌 역사에 획을 그었던 아이돌 가수가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로 우리가 사는 지역과 멀지 않은 벌링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이아가라 온더 레이크에서 데이트를 하는 등 캐나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이 나오니, 마치 우리의 삶이 TV에 나오는 것 같아서 더욱더 반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외에 사는 출연자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강한 공감대가 자연스레 형성되는 걸 보면, 나 역시도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임이 제대로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워털루에 온 지 1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삶이 주는 설렘, 혹은 어색함을 가득 안고 살아갑니다.

어색함이 주는 공포

낯선 환경에서의 어색함은 때로는 공포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똑똑똑”

별거 아닌 이 소리 덕분에 저는 종종 집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바로 노크 소리인데요, 이 콘도에 살 게 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현관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적응이 잘 안 됩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한국의 아파트 초인종 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졌는지 누가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많고, 마치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서의 노크 소리마저도 이방인에게는 어색함으로 느껴지는 걸 보면, 익숙하게 살아온 내 생활 양식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현실이 새삼 느껴지는데요, 캐나다에서 경험하게 된 새로운 삶은 생각보다 한국의 일상과 다른 문화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마주한 ‘어색함’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볼까요?

아날로그인 듯 아닌 듯

먼저 ‘비보호 좌회전’은 저를 매우 당황하게 했습니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지 않을 때라면 적신호가 아닌 이상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는 비보호 좌회전, 반대로 말하면 반대편에서 차가 계속 온다면 좌회전 신호가 없는 이상 좌회전을 하기 힘들다는 것인데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대담하고 자유롭게 좌회전을 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놀랐습니다. 덕분에 저는 비보호 좌회전을 핑계로 캐나다에서의 운전을 미루고 있는데요, 비보호 좌회전을 하기 위한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Traffic circle 혹은 Roundabout이라 불리는 로터리도 큰 숙제 중 하나입니다.

‘열쇠’ 역시 적응하기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입니다. 한국에서는 자동차 키 하나면 충분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집과 관련된 열쇠만 다섯 개가 넘습니다. 다행히도 최근 저희 콘도의 공동 현관 열쇠가 카드키로 변경되어 챙겨야 하는 아날로그식 열쇠가 하나 줄었는데요, 여전히 제 열쇠고리에 달린 열쇠들을 볼 때마다 혹여라도 잃어버릴까 조마조마합니다.

아날로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열쇠와는 다르게 ‘DT 문화’는 저를 신세계로 안내했습니다. DT란 Drive Through의 약자로 차에 탄 채로 이용할 수 있는 카페나 페스트푸드점 등을 말하는데, 차에서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 덕분에 최근 한국에서도 꽤 많이 생기는 형태의 상점입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이 DT 상점이 기존에 제가 알고 있던 스타벅스나 맥도날드를 뛰어넘어 대부분의 페스트푸드점과 카페는 물론 은행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차에 타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니, 자동차가 이동수단 그 이상인 캐나다의 라이프 스타일을 한껏 반영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인사도 가끔은 저를 당황하게 합니다. 한국에서는 실수로 부딪쳐서 사과하는 일을 빼고는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할 일이 거의 없는데, 캐나다에서는 눈만 마주쳐도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심지어 대화로 이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또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모습은 이제 제법 익숙해져서 저 역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심히 잡아주려고 노력합니다. 이외에도 배달 시간 간격이 넓어서 온종일 기다려야 하는 부분과 생각보다 철저하지 않은 분리수거, 집주인이 없는 데도 관리실에서 집에 들어올 수 있는 문화 등 한국과 다른 여러 모습으로 캐나다만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건강에도 좋습니다

익숙함이 주던 편안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배우려 하니 긴장도 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 새로움이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또 내가 지금까지 누려온 익숙함에 대한 감사가 절로 나오는 요즘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 양식부터 많은 부분을 새롭게 배워야 하는 워터루 새내기 이방인이지만, 잘 적응해 목표한 것들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 되도록 오늘도 최선을 다해 캐나다를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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